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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 유래없는 경제성장을 달성해 왔다.최초의 경제계획이 궤도에 오른 1965년의 1 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130 달러였지만, 2007년에는 2만 달러를 넘었다.
그렇지만, 아직껏 북한과의 분단은 계속 되어 1980년대말의 민주화 이후 정치적으로 북한 정책을 둘러싼 좌우파간의 날카로운 대립이나 갈등이 계속 된다.
외교면에서는 일본과의 타케시마(독도) 영유권 문제, 중국과는 고구려를 둘러싼 역사 인식 문제로 일본,중국에 대한 전통적 위협감이 부활했다.
85년의 프라자 합의에 일본의 산업재배치는 아시아의 공업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기러기 행렬 같이 일본을 한국 등 신흥 공업 경제 지역(NIES)이, 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이 쫓는 형태로 발전한다는 아시아관은 아직까지 일본인 의식에 뿌리 깊다.
실제로 기러기 행렬 형태안의 한국은 일본의 산업구조 전환을 뒤쫓아 결과적으로 가장 경합적인 구조를 가지는 형태로 성장했다.
하지만 통화 위기로 세계화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망설이는 일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세계화에서 한,일의 위상은 기러기 행렬 형태 시대와는 반대의 방향을 가지게 되었다.
통화 위기 후 금융기관의 불량 채권 처리를 한국이 먼저 단행 한 것 부터 시작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IT화, 국제 인프라의 정비, 신흥 시장 전략, 문화 수출, 자유무역협정(FTA) 교섭등에서 표면화 되었다.
우선 인터넷이 급격하게 보급된 한국은 기업의 사무 처리 등 민간 부문 뿐만 아니라, 전자 정부에서도 세계 최고로달려간다.
또, 공항·항만의 정비에서도 처음부터 국제 경쟁을 염두해 두고 정비를 도모했다.
민간인 사장을 등용한 인천국제공항은 세계의 공항에 주어지는 상을 연달아 수상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 시장에 재빨리 진출해 뛰어난 마케팅이나, 대담한 현지의 인재 등용에 노력해 삼성 전자의 세계적 브랜드 평가는 일본 메이커를 앞질렀다.
문화 교류의 세계화에도 빨리 눈을 떠 집중적인 지원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한류」로 수출 산업을 만들어 냈다.
난항을 겪는 세계무역기구(WTO) 교섭에 단념해 야심적인 FTA 교섭 전개를 단행했던 것도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가장 빨랐다.
물론, 변함 없이 강경한 노조나, 감정론에 흘러가기 십상인 시민 단체등을 안고 세계화로의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FTA의 상징이었던 대미 협정의 비준 좌절이나 그 원인이 된 과격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은 사회의 불안 심리를 나타냈다.
한국의 정치나 사회는 변화무상 하고 과격하기 때문에 세계화 진입의 한계라고 보거나 국제적인 이미지 실추로 직결시키거나 하는 견해가 일본내에 많고 한국내에서도 정책의 일관성 부족을 지적하는 소리가 많다.
그러나, 수출 지향의 공업화를 경제적 성공의 원점으로 하는 한국에 있어서 세계화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는 의외로 깊은 뿌리를 가진다.일본이나 중국과의 경쟁을 의식하며 살아 남는 길은 양국보다 빨리, 정확하게 글로벌 경제에 적응하는 것 이라고 하는 생각은 환갑(건국 60년)후 제2의 건국 기조가 될 것이다.
1 인당 국민소득에서는 이미 싱가폴이 일본을 제쳤다.
내정 혼란 속에서도 세계화를 진행시켜 최근 5년간 4~5%의 성장을 유지하는 한국이 경제위기에 빠지지 않고, 일본이 세계화를 지체하면 머지않아 한국과도 그러한 역전이 발생 할지 모른다.
아시아는 역동성이 넘친다.일본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운 한국도 세계화의 선도를 바라고 있다.
기러기 행렬 형태 아시아관(일본을 뒤쫓아 가는 아시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히 신문(가가와·유키개와세다 타이세이치경제학술원교수(아시아 경제론))
어느정도의 일본의 폐쇄성과 안주에 자극을 주기위한 의도가 엿보이기도 합니다.우리나라는 더욱 더 세계화로 나아가야 될것으로 봅니다.
너무 성급하지 않게 차분히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조선의 쇄국정책으로 세계의 흐름에 뒤쳐졌던 안타까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말고
새로운 도약의 시기에 잘 대처하고 앞서 나가야 되겠습니다.









